전문가칼럼
[오늘의 인천소사] ‘이별의 인천항’ 가수 박경원(49회ㆍ인상37회)(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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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 인천투데이(25. 5.31)
[오늘의 인천소사] ‘이별의 인천항’ 가수 박경원 타개
/박길상 기자
인천 출신 가수
수많은 히트곡 남겨
인천투데이 = 박길상 기자 | 18년 전 오늘, 2007년 5월 31일 ‘이별의 인천항’을 불렀던 가수 박경원이 타계했다.
박경원은 1931년 4월 3일 당시 경기도 인천부(현 인천시)에서 태어났다. 인천상업학교(현 인천고)를 졸업한 뒤 동국대학교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고교 시절부터 인천상업밴드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 전국 콩쿠르대회에 출전해 1등을 차지하는 등 고교 때부터 가수로서 끼를 보이기 시작했다.
고교 시절 전국 콩쿠르대회 우승
박결원 히트앨범 사진(출처 악보나라)
박경원은 전국 콩쿠르에서 우승한 것을 계기로 작곡가 전오승(‘이별의 인천항’ 작사·작곡)의 눈에 띄게 된다. 대학생 신분이던 1952년 오아시스레코드 전속 가수로도 발탁된다.
전오승은 박경원이 대학생 신분이던 1953년 자신의 곡 '비애블루스'를 박경원에게 부르게 했다. 이를 통해 박경원은 본격적인 가수의 길로 들어섰다. 1954년 ‘이별의 인천항’을 불러 일약 스타가 된다.
1955년 동국대를 졸업했다. 이후 '남성 넘보원', '만리포 사랑', '나포리 연가', '청춘은 산맥을 타고' 등의 히트곡을 불렀다.
대학생 때 ‘비애 부르스’ 불러 가수 데뷔
1972년엔 인천문화상 대중연예부문을 수상했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KBS 가요무대에 자주 출연하여 노래를 불렀다.
1994년 충남 태안군 소원면 만리포 해수욕장에 '만리포 사랑' 노래비가 세워졌고, 1999년 인천 중구 북성동 월미도에 '이별의 인천항' 노래비가 건립됐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7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해외동포 위문공연을 다녀오는 등 활발히 활동했다.
‘이별의 인천항’, ‘만리포 사랑’ 노래비 세워져
2007년 5월 지병인 당뇨병 등의 증세가 악화돼 경기도 일산 백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던 중 세상을 떠났다. 향년 76세였으며, 장례는 가수협회장으로 치러졌다.
박경원이 부른 ‘이별의 인천항’은 1979년 김트리오가 부른 대중가요 ‘연안부두’와 함께 인천인이 가장 즐겨 부르던 노래였다. ‘이별의 인천항’ 1절은 아래와 같다.
쌍고동이 울어대는 이별의 인천항구/갈매기도 슬피 우는 이별의 인천항구/항구마다 울고 가는 마도로스 사랑인가/정들자 이별의 고동 소리 목메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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