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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성(65회)/"대불호텔 진정한 복원은…시대의 정수 담아야"(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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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1. 8.26)
"대불호텔 진정한 복원은…시대의 정수 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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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성 인천시 시사편찬위원
'최초 장소가 아니고(고증 잘못) 복원 의의가 없을 뿐더러(역사 왜곡) 복원이란 용어 자체가 부적합하다(개념 오류)'
국내 최초의 서양식 호텔로 알려진 대불호텔 터(중구 중앙동 1가 18) 발굴 조사와 관련 일부문화계 인사들이 제기하고 있는 '호텔 복원' 주장이 총체적 오류에 빠졌다. 또한 이 '복원' 주장이 전임 안상수 시장 시절 추진하다가 논란과 반대 여론에 밀려 중단된 각국 공원 근대건축물 복원사업의 연장선상 아니냐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관련기사 3면>
대불호텔 복원 주장이 갑자기 제기된 것은 지난 21일 문화재 발굴조사 중 지하 구조를 알 수 있는 건물의 기초 부분을 발견한 이후부터다. 대불호텔 터는 지난 5월23일 상가 건축을 위한 터파기 공사 중 옛 건물 잔재가 발견돼 건축행위가 전면 중단된 채 현재 발굴 조사가 진행 중인데, 지난 21일 지하실, 지하계단, 콘크리트 구조물, 석축, 장대석 등 건물 기초가 발굴됐다.
이에 지역 문화계 일각에선 이를 '평면도'라 할 수 있는 기초 부분이 발굴되었기 때문에 기존에 확보된 외형 사진 등의 자료를 근거로 대불호텔을 복원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지역의 상당수 건축 전문가, 학계 및 문화계 인사들은 무분별한 복원이자 역사 왜곡이라고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조우성 인천시 시사편찬위원은 "설계도, 평면도, 시방서 등 건축의 기초자료도 전혀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단지 지하구조 발견만으로 복원을 주장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 인식에 대한 과대 포장"이라며 "근대 한국 최초의 호텔인 대불호텔은 지금 발굴 중인 '중화루' 자리가 아니라 그 옆의 일본식 2층 건물이었으며, 자국을 침탈한 제국주의 유물을 자료도 없이 무분별하게 복원하자는 주장은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축 전문지 '와이드 AR' 발행인 전진삼 대표는 "대불호텔과 관련한 사진과 그림 몇 점만으로 건물을 복원하겠다는 발상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복원이 아닌 현재의 발굴 유구와 유물, 자료만으로도 역사가치 구현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기존의 인문학적 자료들이 얼개가 되는 '보존' 방안을 점진적으로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갑작스런 복원 주장의 뒷배경에 정치적 논리가 개입돼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도 있다.
이종복 향토연구가는 "대불호텔의 역사성과 건축학적 의미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되며, 일부 지역 언론도 대불호텔과 관련된 섣부른 판단과 여론 몰이를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혁신기자 chohs @i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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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이란 원래 건축 당시의 모습과 느낌을 고스란히 살려내는 것으로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외국에선 100년째 성당을 복원하고 있다지 않습니까. 벽돌 한 장에서부터 문고리 하나, 창틀 하나까지 그 시대의 건축 재료를 기반으로 해 '시대의 정수를 재현할 때'만이 진정한 복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우성(63) 인천시 시사편찬위원은 최근 지역 문화계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대불호텔 복원 주장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대론자이다.
조 위원은 "역사적 기억의 보존을 위해 현재 남아 있는 근대건축물은 당연히 잘 보존하고 활용해야겠지만, 이미 헐어버린 건물들을 별 자료도 없이 이제 와 복원하자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또 "복원 사업의 전제로 관광자원화, 지역적 정체성 제고 등을 들고 있지만, 사진과 엽서 몇 장을 근거로 '복원'할 수는 없는 일이며, 그 같이 없어진 건물의 '창작 재현'은 지역의 정체성 제고와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게다가 조위원에 따르면 현재 발굴 중인 대불호텔 터는 국내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 아니다. 최초로 알려진 현 '중화루 자리 대불호텔'의 건축연도를 1889년으로 알고 있으나, 1889년 미국에서 발간된 시사주간지 '하퍼즈위클리' 지 1월호에 보면 '대불호텔은 일본식 2층 목조건물'이란 기록이 있다고 증언한다.
지금 복원을 주장하는 '중화루 자리 대불호텔'은 1899년 경인선 개통 이전에 그 옆 부지에 증축한 3층짜리 건물로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야기다.
1885년 4월 인천에 온 선교사 아펜젤러 목사도 그의 '선교보고서'에서 "일본인이 경영하는 호텔에 묵었는데, 영어도 잘하고, 서양음식도 맛이 있었다"고 기록한 것을 보면, 1889년에 증축한 '중화루 자리 대불호텔'을 '최초'라 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드러난 사료에 근거하지 않고, 역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는 없는 일이다. 또 근대문화재라고 해서 그 의미를 침소봉대할 필요도 없다. 세창양행 사택, 인천각, 대불호텔 등 없어진 근대건축물을 수백원 억이나 들여 굳이 '복원'의 이름으로 '창작'하자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조혁신기자 cho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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