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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성(65회) 인천시사편찬위원/대불호텔 터 잘못 알려졌다(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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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1. 6. 2)
대불호텔 터 잘못 알려졌다
“1888년 이전 2층 목조건물서 영업 시작” 주장
최근 중구 중앙동 1가에서 발견된 대불호텔의 주춧돌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 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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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성 인천시사편찬위원과 손장원 재능대학 실내건축과 교수는 “대불호텔의 시작은 현재 발견된 유구 옆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2층의 일본식 건물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화제가 된 대불호텔은 1888년 일본 해운업자인 호리 히사타로에 의해 건립돼 1900년대 초까지 운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학계에서는 이를 뒷받침 하는 근거로 인천부사와 최성연 선생의 ‘개항과 양관역정’의 내용을 예로 든다.
인천부사는 대불호텔에 대해 “1888년 착공해 1889년에 완공됐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개항과 양관역정’에는 “1887년에 착공해 1888년에 완공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조 위원과 손 교수는 아펜절러 선교사의 기록을 들어 이 기록은 잘못됐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아펜젤러 선교사가 1885년 남긴 기록에 따르면 “대불호텔은 놀랍게도 영어로 손님을 모시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어 호텔 영업은 우리가 알고 있는 벽돌조 건물 설립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조 위원이 소장하고 있는 1889년 1월에 발간된 미국 주간지 ‘하퍼즈 위클리’와 손 교수가 지난해 열린 한 토론회에서 제시한 1894년 8월 ‘일루트리테 차이퉁(Illustrirte Zeitung)’에 실린 삽화 역시 대불호텔이 1888년 이전인 일본식 목조건물에서 시작됐을 것으로 추측하게 하는 자료다. ‘하퍼즈 위클리’에는 대불호텔을 ‘2층으로 된 일본식 목조건물’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삽화에는 ‘호텔 다이부치 1. 미트 & 브래드(HOTEL DAUBUTS 1. MEAT & BREAD)’라는 간판이 걸린 2층 목조건물을 보여주고 있다.
조 위원은 “이번에 발견된 주춧돌은 일본식 목조건물에서 장사가 잘 돼 호텔을 확장한 것의 일부로 봐야 할 것”이라며 “이를 두고 섣불리 복원을 논의하는 일은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1년 06월 02일 (목)
최미경기자 mkchoi333@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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