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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안길원(62회) 대한적십자 인천지사 회장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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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신문(11. 1.20)
"노란조끼 입고 펼치는 각종 인도주의 활동 자부심"
[특별인터뷰]안길원 대한적십자 인천지사 회장
대한적십자 인천지사 안길원(66) 회장은 바쁜 사람으로 유명하다. 한 달에 두 세 번은 무영건축 회장으로 해외출장을 오가고, 남은 시간 중 절반 가까이는 적십자 인천지사로 출근한다. 24시간을 시분초로 나눠 30시간처럼 쓴다는 안회장이 지난 8월 적십자 인천지사 회장을 맡은 지 다섯 달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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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할 일도 챙겨야할 것도 많아 몸과 마음은 더 분주해졌다. 올해 첫 중점사업은 연평주민 지원 프로젝트다. 연평주민들의 안착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 대규모의 지원이 이뤄진다.
안회장은 서해 5도에 평화가 정착돼야 인천이 국제도시로 성장할 수 있다고 설명하며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당부했다.
▲ 취임한지 오늘로서 다섯 달째다. 그간 어떻게 지냈나. 취임이후 큰 재난들이 이어졌다.
- (웃음) 맞다. 폭우로 인한 침수가 있었고, 태풍 곤파스가 닥쳤다. 11월에는 연평도가 포격됐다. 연속적으로 일이 터졌다.
적십자 차원의 구호활동이 이어져 다섯 달이 1년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다사다난했다는 거다.
▲ 외부에서 지켜보던 적십자 조직과 내부에서 챙기는 적십자 조직은 다르게 느껴졌을 것이다.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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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재난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깨닫게 되고, 소신도 갖게 됐다. 노란조끼를 입고 펼치는 각종 인도주의 활동 등을 지켜보면서 자부심을 느꼈다.
▲ 6·25때 백령도로 피난 나와 인천 사람으로 살았다. 섬 출신 실향민이라 연평도 포격 사태에는 마음이 남달랐을 것 같다.
- 열살 당시 전쟁의 기억들이 생생히 살아나더라. 주민들의 고난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얼마나 절박했을까 어떤 심정일까 등 너무 잘 알겠더라. 옷 보따리도 제대로 못 싸고 하룻저녁에 뭍으로 나온 심정은 비슷한 경험을 해본 사람이 아니면 상상이 안 갈 거다.
인스파월드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적십자의 구호가 이뤄졌고 앞으로 주민들이 섬에 안착할 때까지 지원할 것이다.
포격이후 연평도에는 밥차가 들어갔다. 일주일간 500인분의 식사를 일주일간 제공했다. 사실 이 밥을 얻어먹은 사람들은 주민보다 내외신 기자들이다. 이들에게도 구호활동을 펼쳤다.(웃음)
▲ 연평 주민들을 위해 특별한 지원이 이뤄진다고 들었다. 소개 좀 해 달라.
- 연평도를 포함한 서해5도를 지원하기 위해 42억원 규모의 지원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주민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 새로운 비전을 만들기 위해 진행하는 거다. 서해5도에 평화와 희망을 심자는 차원에서 단계적으로 지원을 펼칠 것이다.
우선 연평도 주민들에게 1억7천여만 원의 난방료와 생필품을 지원한다. 섬에 남아 있는 500여 세대에게 우선 지원하고 사용량에 따라 추가지원을 할 것이다.
또 일선 학교에 컴퓨터 전자사전 등 학습기자재 비용 1억3천만원을 배정했다. 군부대 장병들을 위해 세탁기 등 1억6천여만 원이 별도로 지원된다. 주민들에게는 3억~4억원 규모 추가지원도 준비하고 있다.
이것들을 위해서는 이미 재원이 확보돼 있는 상태다.
또한 서해5도에 도서관과 체험학습 공간을 조성할 것이다. 연평도에는 7억의 기금을 출연해 희망씨앗 장학금을 지원할 것이다. 이것을 토대로 서해5도까지 장학금 지원을 확대할 것이다.
▲ 연평도 포격사태이후 많은 사람들이 평화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관점도 내용도 다르다. 적십자회장으로서 포격이 재발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 강력 대응 태세도 중요하지만 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북한동포는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인천은 해주 등의 인접지역과 교류를 시도해야 한다. 구호의 손길이 우선일 것이다.
이런 것들이 쌓이면 대북관계를 푸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나.
이런 의미에서 송영길 시장이나 정치인들이 백령도에 중국인을 위한 관광시설을 만들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무비자 입국을 추진하고 카지노, 면세점, 위락시설을 조성하면 배타고 중국인들이 몰려들 것이다. 배타고 오면 인천보다 백령도가 가깝다.
여기에는 절대 총질이나 대포질 못하겠지. 관광객이 서해5도에 드나들게 되면 긴장된 남북관계에 완충역할
을 할 수 있으리라 본다. 백령도 용기포항에 3천톤급 페리호가 다니게 되면 기후에 상관없이 관광객이 올 수 있다. 관광지도가 달라질수 있다는 얘기다.
▲ 취임 당시 계획했던 일들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가. 국제도시 인천에 걸맞은 인천적십자, 다문화인 역점 지원, 아시아 국가와 교류 활동 등을 얘기했는데.
- 하고 싶다고 했지만 다 됐겠는가. 다급한 일들이 연이어 터졌는데(웃음). 하지만 체계적인 구호활동, 재해 복구활동 조직화 등은 어느 정도 선진화된 것 같다.
가장 아쉬운 것은 다문화인 사업이다. 베트남 등과 교류사업을 계획했지만 국가적인 중대사 때문에 진전을 보지 못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추진할 것이다.
▲ 현재 다문화사업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나. 이들을 위해 가장 시급하게 해야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개인적 차원에서는 적십자에 몸담고 나면서 접근하고 있는 분야다. 명절에 여는 정기행사 외에 다양한 사업들을 하고 있더라. 작년 추석에는 송편빚기 대회를 열었다. 재미나게 함께 즐겼다.
사회가 변해야 한다. 이미 세계는 다문화사회다. 우리나라처럼 단일민족 국가는 드물다. 외국인근로자가 우리나라 경제의 일부분을 담당하고 있으니 이들은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결혼이민자도 그렇고, 공존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들을 우리와 함께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의 인식전환이 가장 중요하고, 동시에 이들을 위한 적응프로그램 지원 등이 수반돼야 한다. 베트남과 교류를 하려는 것도 이러한 차원에서다. 베트남·몽골인이 우리와 같이 살고 있으니 넓게보면 베트남도 몽공도 필리핀도 우리의 이웃이다. 이미 세계는 글로벌시대다. 우리사회가 성숙해야 한다. 사회저변에 ‘공존의 문화’ 공감대가 확산돼야한다. 적십자도 이를 위해 노력할 것이고, 그 실천을 확대하겠다.
▲ 적십자 회장으로 현장도 많이 다녔겠다. 가장 특별했던 곳은 어디인가.
- 복지사각지대가 너무 많더라. 노령에 접어든 실향민을 만났을때 가슴 아팠다. 80세 넘은분들이 쪽방에 홀로 살고 계시더라. 울컥했었다. 미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을 살피는 것이 우리의 할일이라는 것은 새삼 깨닫게 됐다.
▲ 국민의 회비로 운영하는 적십자가 국민의 뜻과 상관없이 쌀과 생필품을 북한에 퍼주고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 오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대북지원품에 적십자 로고를 새겨 포장할 뿐이다. 이는 대정부차원의 지원이지 적십자차원의 지원이 아니다. 다만 적십자 마크를 새기는 이유는 동포들을 위한 인도주의적 지원물품이라는 것을 명시하기 위해서다. 국민의 회비를 쓰면서 무조건 다수의 뜻을 거스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개인적 차원에서 어렵게 사는 동포들인데 인도주의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적십자 회비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왜 줄고 있다고 생각하나.
- 회비 자진납부 상황이 30%가 안된다. 해마다 납부율이 떨어지고 있다. 1차적으로는 적십자가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라고 생각하고 싶다. 아울러 많은 복지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어서 분산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납부율이 40~50%만 되면 구호의 폭을 넓힐 수 있다.
▲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모든 문제는 내 탓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변화시킬 수 있다. 신뢰를 받도록 노력하겠다. 피해서 돌아가기는 것보다 솔직하게 반성하고 바르게 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게 최선이다. 그래야 시민들이 이해해주시고 격려해 주실 테니까.
송영길시장을 비롯해 지역 정치인과 인사들이 적십자 특별회비를 내줬다. 이들이 돈을 내는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회비를 낼 수 있도록 돕는데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뜻이다. 지켜봐주시고 회비 많이 내주십사 하는 말씀을 드린다.
2011년 01월 20일 (목)
유승희기자 ysh8772@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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