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가야할 길 온 길 보다 더 아득하다.
작성자 : 정 태황
작성일 : 2010.10.09 08:15
조회수 : 1,207
본문
6~7년쯤 되려나 꽤 오래 전부터다. 해마다 이맘 때쯤이면 노벨상 소식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그리고는 으레 한국한테 영예가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는 문학 쪽을 치켜봤다. 헌데 올해야말로 유력한 수상 후보라고 했던 고은 시인이 다시 문학상 수상에서 비켜섰다. 섭섭한 데다 마음밭이 조금 쓸쓸해진다. 그야말로 마음밭이 이 을씨년스런 가을날 '배추밭'에 가있는 형국이라고 할까.
세계적 권위를 누리는 상이라고 마냥 머리를 조아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 세상에서 정치의 개입에서 온전히 자유로운 상이란 없다. "인류의 평화에 이바지한 사람에게 주라"는 노벨의 갸륵한 뜻이 문학에만 가있는 것도 아닐 터이다. 그런데 때에 따라서 우리 앞에는 '서양의 벽'이 가로누워 있기도 하다. 더구나 문학 분야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느낄 수 있겠다. 아무튼 나로서는 한국 문학이 노벨상 감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맘 때쯤이면 또 번역문제를 꺼내는 사람들이 나온다. 인터넽을 훑어보자니 그 가운데에는 일종의 언어순결주의적 열정까지 튀어나온다. 조선말의 웅숭하고도 때깔 고운 말결은 외국어로 옮길 수 없다는 '신화' 아닌 신화도 꽤 널리 퍼져 있다. 그런 게 도대체 어디 있는가. 그 역의 관계를 생각해봐도 쉽게 해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은가. 만일 노벨이 지금 살아 있다면 필경 그렇게 지독한 자기 중심성부터 꾸짖을 게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 문학은 생각처럼 그렇게 울 안에 갇혀 지내는 게 아니다. 실제로도 여러 작가의 작품들이 오랜 기간 주요 외국어로 깊고 널리 번역이 돼왔다는 말이다. 어쩌면 '안주인'보다 바깥에서 더 많이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떠나고 없는 작가들까지 포함하여(예를 들면 박경리, 이청준...).
고은 시인의 경우, 나는 언뜻 작품의 저변을 흐르는 '선불교의 세계'가 떠올랐다. 어쩌면 그것이 심사위원들에게 아직도 낯선 데가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오늘 특히 눈에 뜨이는 아래 두 편의 기사를 함께 싣는다.
글쓴이 박소연 기자 (2010-10-8 <아시아경제>)
"수많은 내일들 오늘이 될 때마다 나는 곧잘 뒷자리의 손님이었다."
고은 시인의 '두고온 시'의 일부다. 적어도 지난 7일 노벨문학상 발표 때만큼은 그도 그랬을 것이다.
사실 고은 선생은 지난 2002년 이후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돼왔다. 특히 올해는 외신들까지 가세하며 고은 선생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했다. 그만큼 국민들의 기대는 컸다.
최근에는 25년에 걸쳐 완성한 대서사시 '만인보'를 탈고하며 문학적 절정을 맞이한 고은 시인이 이번만큼은 꼭 수상하기를 취재진들도 바랐다. 그래서일까. 이날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고은 시인의 집 앞에는 수많은 취재진과 응원에 나선 시민들이 합세하며 사뭇 장관을 이뤘다. 낮은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정원은 소박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고은 시인의 마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들 중에는 수년째 꽃다발을 들고 응원을 왔다는 아마추어 시인을 비롯해 아들, 딸과 손잡고 이곳을 찾은 아버지도 있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고은 시인 대신 페루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를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아쉬움에 자리를 뜨지 못하는 시민들도 많았다. 이번 발표로 상심이 클 고은 시인을 걱정하는 시민들도 많았다. 두 자녀와 함께 왔다는 이민선씨는 "다음번에 또 기회가 있으니까 건강하게 기다리셨으면 한다"며 노 시인을 위로했다.
고은 시인은 이번에도 아쉽게 노벨문학상 꿈을 접었다. 하지만 그의 용광로 같은 열정과 민족혼, 그리고 난해하면서도 해박한 지식으로 풀어쓴 시는 우리에게는 노벨문학상보다 훨씬 더 소중하다.
"저물녘 산들은 첩첩하고 가야 할 길, 온 길보다 아득하더라"
그가 쓴 '두고온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지금까지 걸어온 것처럼, 고은 선생이 앞으로도 건강과 함께 우리 곁에 영원하길 기원해본다.
글쓴이 정남구 기자 도쿄 특파원(<한겨레닷컴> 2010-10-7)
기초과학 노벨상 휩쓰는 ‘일본의 힘’ 어디서…
일 국적 2명 화학상 받아
과학분야 역대 14명 수상
네기시 에이이치(75) 미국 퍼듀대학 특별교수와 스즈키 아키라(80) 홋카이도대학 명예교수 등 일본 국적의 과학자 2명이 올해 노벨화학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되면서, 일본의 과학기술 수준에 또 한번 세계의 눈이 쏠리고 있다.
두 사람이 새 촉매제를 활용한 탄소결합법 개발 공로로 노벨상을 받게 되면서 일본의 자연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는 모두 14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지금까지 노벨상을 받은 일본인 17명 가운데 문학상의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년)와 오에 겐자부로(1994년), 평화상의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1974년) 3명 외엔 모두가 자연과학 분야 수상자였다. <아사히신문>은 1901년 이후 화학·물리학·의학 3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를 국적별로 보면 일본은 미국(234명), 영국(76명), 독일(68명), 프랑스(29명), 스웨덴(16명), 스위스(15명)에 이어 7위라고 전했다.
일본의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 배출은 2000년대 들어 특히 두드러진다. 2000년 시라카와 히데키 박사가 화학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11년동안 7차례에 걸쳐 일본 국적자 9명이 노벨상을 받았다. 1970년 미국 국적을 취득한 2008년 물리학상 수상자 난부 요이치로 박사를 포함시키면 일본 출신 수상자는 10명이나 된다. 화학상은 2000년 이후 5차례나 수상자를 배출했다.
특히 2002년 시마즈 제작소의 연구원이던 다나카 고이치가 43살의 젊은 나이로 화학상을 받고, 2008년 물리학상 공동수상자 3명과 화학상 수상자(시모무라 오사무)를 한꺼번에 일본에서 배출한 사례는 일본 과학기술의 저력을 세계에 과시했다. 의사 스기타 겐파쿠가 1774년 네델란드판 해부학 교과서를 번역하면서 시작된 근대과학 연구의 오랜 역사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에선 이번 노벨화학상 수상을 세계 최초의 소행성 탐사선 하야부사가 지난 6월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소행성에서 암석을 채취해 귀환하는 데 성공한 데 이은 세계적인 경사라고 평가한다. 요네쿠라 히로마사 일본 게이단렌회장은 “일본 과학기술의 자신감을 드높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 과학기술의 앞날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다. 1990년대부터 확산된 ‘이공계 기피현상’ 때문이다. 이공계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이 어렵고, 취직에 성공해도 문과계 출신에 견줘 생애임금이 5000만엔 가량 적다는 조사결과가 나와 있다. 이로 인해 실력있는 젊은이들이 문과계나, 의학·약학 부문을 선호하고 있다. 미국에서 활동해온 네기시 교수는 “일본 젊은이들이여 외국으로 나오라. 바깥으로부터 일본을 보라”고 충고했다
세계적 권위를 누리는 상이라고 마냥 머리를 조아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 세상에서 정치의 개입에서 온전히 자유로운 상이란 없다. "인류의 평화에 이바지한 사람에게 주라"는 노벨의 갸륵한 뜻이 문학에만 가있는 것도 아닐 터이다. 그런데 때에 따라서 우리 앞에는 '서양의 벽'이 가로누워 있기도 하다. 더구나 문학 분야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느낄 수 있겠다. 아무튼 나로서는 한국 문학이 노벨상 감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맘 때쯤이면 또 번역문제를 꺼내는 사람들이 나온다. 인터넽을 훑어보자니 그 가운데에는 일종의 언어순결주의적 열정까지 튀어나온다. 조선말의 웅숭하고도 때깔 고운 말결은 외국어로 옮길 수 없다는 '신화' 아닌 신화도 꽤 널리 퍼져 있다. 그런 게 도대체 어디 있는가. 그 역의 관계를 생각해봐도 쉽게 해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은가. 만일 노벨이 지금 살아 있다면 필경 그렇게 지독한 자기 중심성부터 꾸짖을 게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 문학은 생각처럼 그렇게 울 안에 갇혀 지내는 게 아니다. 실제로도 여러 작가의 작품들이 오랜 기간 주요 외국어로 깊고 널리 번역이 돼왔다는 말이다. 어쩌면 '안주인'보다 바깥에서 더 많이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떠나고 없는 작가들까지 포함하여(예를 들면 박경리, 이청준...).
고은 시인의 경우, 나는 언뜻 작품의 저변을 흐르는 '선불교의 세계'가 떠올랐다. 어쩌면 그것이 심사위원들에게 아직도 낯선 데가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오늘 특히 눈에 뜨이는 아래 두 편의 기사를 함께 싣는다.
글쓴이 박소연 기자 (2010-10-8 <아시아경제>)
"수많은 내일들 오늘이 될 때마다 나는 곧잘 뒷자리의 손님이었다."
고은 시인의 '두고온 시'의 일부다. 적어도 지난 7일 노벨문학상 발표 때만큼은 그도 그랬을 것이다.
사실 고은 선생은 지난 2002년 이후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돼왔다. 특히 올해는 외신들까지 가세하며 고은 선생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했다. 그만큼 국민들의 기대는 컸다.
최근에는 25년에 걸쳐 완성한 대서사시 '만인보'를 탈고하며 문학적 절정을 맞이한 고은 시인이 이번만큼은 꼭 수상하기를 취재진들도 바랐다. 그래서일까. 이날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고은 시인의 집 앞에는 수많은 취재진과 응원에 나선 시민들이 합세하며 사뭇 장관을 이뤘다. 낮은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정원은 소박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고은 시인의 마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들 중에는 수년째 꽃다발을 들고 응원을 왔다는 아마추어 시인을 비롯해 아들, 딸과 손잡고 이곳을 찾은 아버지도 있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고은 시인 대신 페루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를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아쉬움에 자리를 뜨지 못하는 시민들도 많았다. 이번 발표로 상심이 클 고은 시인을 걱정하는 시민들도 많았다. 두 자녀와 함께 왔다는 이민선씨는 "다음번에 또 기회가 있으니까 건강하게 기다리셨으면 한다"며 노 시인을 위로했다.
고은 시인은 이번에도 아쉽게 노벨문학상 꿈을 접었다. 하지만 그의 용광로 같은 열정과 민족혼, 그리고 난해하면서도 해박한 지식으로 풀어쓴 시는 우리에게는 노벨문학상보다 훨씬 더 소중하다.
"저물녘 산들은 첩첩하고 가야 할 길, 온 길보다 아득하더라"
그가 쓴 '두고온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지금까지 걸어온 것처럼, 고은 선생이 앞으로도 건강과 함께 우리 곁에 영원하길 기원해본다.
글쓴이 정남구 기자 도쿄 특파원(<한겨레닷컴> 2010-10-7)
기초과학 노벨상 휩쓰는 ‘일본의 힘’ 어디서…
일 국적 2명 화학상 받아
과학분야 역대 14명 수상
네기시 에이이치(75) 미국 퍼듀대학 특별교수와 스즈키 아키라(80) 홋카이도대학 명예교수 등 일본 국적의 과학자 2명이 올해 노벨화학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되면서, 일본의 과학기술 수준에 또 한번 세계의 눈이 쏠리고 있다.
두 사람이 새 촉매제를 활용한 탄소결합법 개발 공로로 노벨상을 받게 되면서 일본의 자연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는 모두 14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지금까지 노벨상을 받은 일본인 17명 가운데 문학상의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년)와 오에 겐자부로(1994년), 평화상의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1974년) 3명 외엔 모두가 자연과학 분야 수상자였다. <아사히신문>은 1901년 이후 화학·물리학·의학 3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를 국적별로 보면 일본은 미국(234명), 영국(76명), 독일(68명), 프랑스(29명), 스웨덴(16명), 스위스(15명)에 이어 7위라고 전했다.
일본의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 배출은 2000년대 들어 특히 두드러진다. 2000년 시라카와 히데키 박사가 화학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11년동안 7차례에 걸쳐 일본 국적자 9명이 노벨상을 받았다. 1970년 미국 국적을 취득한 2008년 물리학상 수상자 난부 요이치로 박사를 포함시키면 일본 출신 수상자는 10명이나 된다. 화학상은 2000년 이후 5차례나 수상자를 배출했다.
특히 2002년 시마즈 제작소의 연구원이던 다나카 고이치가 43살의 젊은 나이로 화학상을 받고, 2008년 물리학상 공동수상자 3명과 화학상 수상자(시모무라 오사무)를 한꺼번에 일본에서 배출한 사례는 일본 과학기술의 저력을 세계에 과시했다. 의사 스기타 겐파쿠가 1774년 네델란드판 해부학 교과서를 번역하면서 시작된 근대과학 연구의 오랜 역사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에선 이번 노벨화학상 수상을 세계 최초의 소행성 탐사선 하야부사가 지난 6월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소행성에서 암석을 채취해 귀환하는 데 성공한 데 이은 세계적인 경사라고 평가한다. 요네쿠라 히로마사 일본 게이단렌회장은 “일본 과학기술의 자신감을 드높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 과학기술의 앞날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다. 1990년대부터 확산된 ‘이공계 기피현상’ 때문이다. 이공계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이 어렵고, 취직에 성공해도 문과계 출신에 견줘 생애임금이 5000만엔 가량 적다는 조사결과가 나와 있다. 이로 인해 실력있는 젊은이들이 문과계나, 의학·약학 부문을 선호하고 있다. 미국에서 활동해온 네기시 교수는 “일본 젊은이들이여 외국으로 나오라. 바깥으로부터 일본을 보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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