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인천학생 6·25 참전사 발행 이경종(53회) 옹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신문(10. 6. 8)
"고향땅 밟지 못한 친구들에게 죄스러워 "
인천학생 6·25 참전사 발행 이경종 옹
“휴전이 됐으나 다시 고향 인천땅을 밟지 못한 친구들이 많았다. 고향에 돌아온 친구들과 동네 형, 동생들은 충혼탑을 세웠고, 그들의 피와 땀으로 민족은 이어져간다.”
지난달 29일 세 판째 발행된 ‘인천학생 6·25 참전사’의 서문 중 일부다.
2007년 첫 판을 시작으로 두 번째 증보판이 발행된 이 책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인천출신 학도병의 참전사를 담은 인천 유일의 전쟁기록서이다.
![]() |
한국전쟁은 이 옹이 인천상업중학교(현 인천고교 전신) 3학년에 재학중이던 16살때 발발했다. 북한군이 인천을 함락해 주둔하면서 용유도로 몸을 숨긴 이 옹은 9·15 수복이 되면서 인천에 돌아와 당시 인천 답동성당 뒷편에 있던 학도의용대 해성지대에 친구들과 함께 자진 입대한다.
그러나 전세(1·4후퇴)가 다시 기울면서 이 옹은 친구, 선후배들과 함께 천신만고 끝에 걸어서 부산으로 내려간다. 부산 제1훈련소에서 자신보다 큰 소총으로 간단한 훈련을 받은 이 옹은 어린나이지만 한 명의 병력이 아쉬운 탓에 탈영병의 군번을 승계받아 곧 전투에 배치된다.
그 후 고성 향로봉 전투와 철원 금화지구 전투에 참가해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고 1954년 12월 전장을 떠나 고향땅을 밟았다. 그로부터 41년이 흐른 1995년 겨울. ‘6·25 참전용사 증서’가 그에게 날아든다. 당시 증서를 받아든 이 옹은 김영삼 대통령 명의로 발급된 만큼 무공훈장 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냥 참전 증명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향땅을 밟지 못한 친구들과 동네 형, 동생들에게 죄스럽고 미안했다.
그때부터 그는 아들 규원(49·치과의사)씨의 도움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생존한 옛 인천학도병을 찾아 나섰다. 이들이 세상을 뜨면 인천학도병 이야기도 역사속에 영원히 묻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찾아낸 전우가 400여 명. 이들의 생생한 육성이 담긴 녹취록과 색바랜 옛 사진만 수백통, 수천장에 이른다.
‘인천학생 6·25 참전사’에는 이들이 모두 담겨있다. 장장 15년 간에 걸쳐 완성된 인천학도병의 역사는 이렇게 세상밖으로 나왔다.
“좌우 이데오르기를 떠나 전쟁 당시 참전한 학도병과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386운동권 세대는 불행한 역사속에서 구국의 열정을 태운 젊은이라는 점에서 같지 않느냐.” 이 옹이 386세대 젊은 인천시장에게 바라는 것은 자신이 그동안 모은 옛 전우들의 기록과 그들이 후대에서 전할 자산을 한데 모을 조그만한 전시관을 마련하는 것이다.
2010년 06월 08일 (화)
박주성기자 jspark@i-today.co.kr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