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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이기문의 희망 에세이 ‘신호등 없이 사는 세상’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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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이기문의 희망 에세이 ‘신호등 없이 사는 세상’을 읽고....
이기문의 책 ‘신호등 없이 사는 세상’을 기쁘게 받아들고 펼쳐 읽어 보기도 전에 난 잠시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이 도시에 신호등이 없다면......?’ 하고 상상해 보며
쓴 웃음을 지어 보았다.
상상할 수 없는 일...
문명의 이기 자동차문화와 함께 생긴 저 신호등이 없다면
이 도시의 거리는 어찌될까?
어느 헐리웃 영화에서 금고의 금괴를 털어 도주하며 신호등을 장악하고
거리의 신호등을 마음대로 제어하며 자신들의 도피통로로 이용하는 장면을 본적이 있다.
정지된 신호등이 생기며 단 몇 초 만에 교차로는 아수라장이 되고
도시 전체가 한 순간에 마비되는 장면.....
그게 바로 우리 앞의 일상적이고 물리적인 신호등의 위력이다.
사실 난 가끔 신호등이 있어 좋다는 생각을 가져 본적이 있다.
정신없이 걷고 내닫는 긴장의 한복판에서
그나마 잠시 틈과 여유의 미학을 생각해 본 것이다.
걷던 길을 잠시 멈추면 세상이 보인다.
곁에 계절도 보이고 마주한 건너편 늙은 꼬부랑 노인네의 주름도 읽어진다.
그리고 내가 걷던 길이 어디로 무엇을 향해 걷는 것인지 곱씹는 맛도 있다.
이기문은 아예 신호등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
그는 신호등이 없어도 함께 어우러져 흥겨운 춤을 추는 이상을 꿈꾼다.
각자가 서로가 되고 또한 우리가 되어 함께 어울려 사는 일.
제어하지 않아도 물이 모양 따라 흐르듯
순리와 순응하며 경쟁하지 않고 양보하며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신명나는 세상이
이기문의 세상이요 꿈이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제도와 관념
그리고 문명 사이로 합의된 여러 제어장치 안에서
제한적 자유를 누리고 사는 사회적 존재이다.
개인 스스로와 사회적으로 합의된 장치 구조 안에서
아파하거나 아니면 마음껏 누리며 산다.
때론 그 합의가 긍정의 힘을 발휘하여 행복의 조건이 되기도 하지만
혹자에게는 자칫 겹겹이 둘러싸인 불신의 벽이 생기며 상처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기문이 즐겁게 핸들을 잡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듯하다.
그동안 그가 알지 못하던 주변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상생의 의미를 생각하고 이해와 타협이라는 너그러움의 지혜를
한 움큼 움켜지는 참 맛을 그는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인권변호사에서 국회의원으로,
타인의 사는 모습들을 어쩌면 바라만 보았을 수도 있던 그가
인생극장의 주인공이 되어 직접 경험하고 땀 내 나고 비린내 나는 이야기 안에서
그들과 함께 웃고 함께 울며,
네 일이 내 일이 되고,
내 일이 네 일이 되는 고소한 세상살이를 맛보고 있는 것이다.
굳이 되짚어 말하자면
자연친화적 환경에 공존하여
가장 인간다운 질서행위 안에서 신뢰를 기반으로 어우러져 함께 사는 세상이
이기문의 ‘신호등 없는 세상’인 것이다.
그가 스스로에게 반문과 질문을 수없이 던지며
변호사의 이름으로 택시드라이버가 된 이유도 그래서 아름답다.
세간의 입방아를 모를리 없는 그가 작심하고 폐달을 밟으며
그는 처음의 생각한바 와는 사뭇 다른 경험과 알곡을 얻었을 것이다.
그가 적시하였듯, ‘백 원’ ‘이백 원’의 가치를 새삼 가슴에 담으며
하루하루 택시기사가 되어간다는 그 과정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애초 마음먹었던 이웃의 삶 깊숙이 함께 하며
그들의 소리를 듣고 애환을 담아보려던 계획보다 먼저
‘백 원’ ‘이백 원’의 가치와
거기에 달라붙어 있는 삶의 노래를 먼저 체득했다는 것은
이기문이 얻은 가장 큰 수확이리라 확신한다.
그가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는 이미 택시기사로 우리 곁의 이웃이 되었다.
이제 그는 또 다른 꿈을 꿀 것이다.
그의 꿈은 세상에 대한 실천으로 이어질 것이고
지금의 택시기사 경험이 겉절이 양념처럼 세상을 맛깔나게 할 것이라 기대한다.
내가 아는 이기문은 그런 친구다.
이천구년 가는 달에 이기문의 ‘신호등 없는 세상’ 출간을 축하하며
친구 이덕호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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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용님의 댓글
아리따운 두분의우정 부럽습니다
두분 하시는일 잘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