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노릇(퍼온글)
본문
퍼온곳 : 기호일보(25. 5.21)
노릇
/원현린 주필(主筆)
원현린 주필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과 구실을 다할 때 밝고 건전한 사회가 이룩된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은 국가를 위하여, 국가의 지도층 인사들은 국민을 위하여 일할 때 국민답고 리더다운 것이다. 국가가 부르면 나아가 뜻을 펼치고, 쓰이지 아니할 때는 물러나는 것이 공인(公人)의 도리다.
요즘 툭하면 "노릇 못해 먹겠다"고들 한다. 심지어 대통령조차도. 노릇은 사전적 풀이로 ‘그 역할과 구실을 낮추어 나타내는 말’이다.
교권 보호 대책이 시급하다. 학교에서 교사가 떠나면 학생 교육은 누가 담당해야 하는가. 떠나는 이유는 민원 폭주와 지나친 간섭 등으로 "교사 노릇 못해 먹겠다!"다.
교사답지 못하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특단의 교권보호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교사들의 학교 이탈을 막을 방법은 없다. 우리는 지금 무너지는 윤리관(倫理觀) 속에서 사라지는 교사들을 그저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승의 날을 전후해 발표된 한 통계가 우리를 허탈하게 한다. 교권 침해 탓에 다수의 젊은 교사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있다는 내용이다.
2023년 3월부터 2024년 2월까지 퇴직한 10년 차 미만의 초·중·고등학교 교사는 576명에 달했다. 일선 교사 5명 중 3명이 지난 1년 동안 교단을 떠나는 것을 고민해 봤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이유는 교권 침해, 낮은 임금, 과도한 업무 등이라 한다.
교권침해 주체별 현황을 보면 더욱 충격적이다. 지난해의 경우 학생들의 생활지도 불응(32.4%), 모욕·명예훼손(26%), 상해·폭행(13.3%), 성적 굴욕감(8.4%) 순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보호자 등에 의한 반복적 부당 간섭(24.4%), 모욕·명예훼손(13%), 협박·상해폭행(10%), 공무·업무방해(9.3%) 등 순이었다.
교사들이 떠난 학교는 있을 수 없다. 이미 학교가 아니다. 탈무드가 교훈을 주고 있다. 지도자 랍비가 한 마을을 시찰하라고 두 랍비를 보냈다. 두 랍비가 그 마을에 가서 말했다. "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소." 그러자 곧 그 마을의 경찰서장이 나왔다. "아니오.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람은 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오." 이번에는 수비대장이 나왔다. 그러자 두 랍비가 또 말했다. "우리는 아직 이 나라가 어떻게 지켜지고 있는가를 보지 못했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것은 경찰서장이나 수비대장이 아니라 학교입니다. 교육자들이야말로 진정으로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소. 왜 나를 제일 먼저 학교로 데리고 가지 않습니까?"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내용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릇 제대로 하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노릇은 안하고 답지 못한 행동으로 스스로를 망치고 사회를 해하는 예는 많다.
"지도자는 그 도량이 넓고 뜻이 굳세지 않으면 안 된다. 맡은 책임이 무겁고 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이다. 인(仁)으로써 자기의 책임을 삼으니 그 책임이 막중하지 아니한가? 죽은 뒤에야 끝나는 것이니 가야 할 길이 멀지 아니한가.(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 증자(曾子)의 말이다.
리더는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면 분연히 일어나 구국(救國)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일종의 경세문(警世文)이기도 하다. 짊어진 짐이 무겁고 처한 상황이 어렵다는 구실로 내려놓지 말고, 노릇 못해 먹겠다고 하지 말고, 주어진 사명을 다해야 한다는 지식인을 향한 하나의 명령이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있어 이 땅에 정의를 세우겠는가?
어버이는 어버이답고 자녀는 자녀답고, 스승은 스승답고, 제자는 제자다워야 한다. 답지 못한 자들이 너무 많다. 인정이 없고 모진 사회를 각박(刻薄)한 사회라고 한다. 이제 천륜(天倫)이니 인륜(人倫)이니 하는 단어는 이미 낯선 언어가 돼 가고 있다. 패륜사건 기사가 신문지면을 장식해도 별반 놀랍지 않다는 반응들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들어 있는 오월을 보내며 자성(自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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